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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2026.03.28log

noise라고 부를 뻔했다

내 서비스를 설명하는 말 한마디에 며칠을 쓴 이유

관제탑의 채팅창에 이렇게 입력했다. "우리 서비스의 영어 슬로건을 만들어줘. 재치 있고 지적인 형태로."

엔터를 누른 뒤, 이상한 긴장이 왔다.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할 때는 이런 긴장이 없었다. 코드는 답이 있다. 에러가 나면 고치면 된다.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거나. 하지만 슬로건을 만들 때는 "맞다"라는 기준이 없다. 모든 선택지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고르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인상 자체가 달라진다.

여러 후보가 나왔다. "Watch less. Know more." — 덜 보고, 더 알아라. "Turn rabbit holes into goldmines." — 유튜브 토끼굴을 금광으로. "The knowledge layer YouTube forgot to build." — 유튜브가 깜빡 잊고 안 만든 지식 레이어.

그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건 이것이었다.

"Turn noise into notes."

소음을 노트로. 네 단어. noise와 notes의 한 글자 차이에서 오는 리듬. notes가 "메모"와 "음표"를 동시에 품고 있다는 이중성. 유튜브(소리/영상)에서 지식(노트)으로의 전환을 한 문장에 압축한다. 마음에 들었다.

관제탑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답이 왔다. 강점은 확실하다고. 하지만 한 가지 고려할 점이 있다고.

"noise라는 단어가 사용자의 시청 행위를 부정적으로 프레이밍합니다."

이 한 문장이 머릿속에 걸렸다. "rabbit holes"는 "아 맞아, 나 그래"라는 공감이다. 유튜브에서 끝없이 빠져드는 경험은 누구나 알고, 그것을 유쾌하게 인정하는 뉘앙스가 있다. 하지만 "noise"는 "네가 보는 건 소음이야"로 읽힐 수 있다. 이 서비스의 사용자는 이미 의미 있는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이다. 학습 목적으로 유튜브를 쓰는 사람. 그 사람들의 시청을 "소음"이라고 부르는 게 과연 적절한가.

AI가 덧붙였다. "브랜드 톤이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방향이라면 noise가 더 강합니다. 브랜드 톤이 공감과 파워유저 방향이라면 rabbit holes가 더 안전합니다. 둘 다 훌륭한데, 성격이 다릅니다."

성격이 다르다.

이건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서비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였다. 사용자가 하고 있는 일을 문제로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하고 있는 좋은 행동에 가치를 더해줄 것인가. "네가 보는 건 소음이야, 우리가 정리해줄게"와 "네가 빠지는 토끼굴, 거기서 금을 캐자"는 같은 기능을 설명하지만, 사용자에게 전혀 다른 감정을 준다.

결국 "Turn noise into notes."를 버렸다. 좋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내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말하고 싶은 톤은 그게 아니었다.

슬로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비스 하나의 슬로건과 별개로, 전체 브랜드의 이름과 태그라인을 잡아야 했다. 이 서비스는 앞으로 만들 여러 서비스 중 첫 번째일 뿐이니까.

unstackd.io. "막힌 것들을 풀어내다"라는 뜻. 이 방향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망설인 순간이 있었다.

마스터 플랜에는 서비스 포트폴리오가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가격 구조, 론칭 순서, 크로스 프로모션 전략까지. 당연히 랜딩 페이지에도 이것들을 진열하려고 했다. "우리는 이런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제탑과 대화하다가 방향이 바뀌었다. 밖에 보이는 것과 안에서 계획하는 것은 다르다는 이야기. 안에서는 로드맵이 있지만, 밖에서는 "만든 것들이 하나씩 나타나는 작업실"로 보이면 된다고. 사이트가 계획을 선언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다. 자기 PR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걸 발표합니다"보다 "이런 걸 만들었어요"가 훨씬 편했다. 관제탑이 준 방향이 나랑 맞았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편하기 때문인 건 아닌지도 점검해야 했다. "편하다"는 이유로 전략적으로 맞는 결정을 내리는 건 괜찮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전략적으로 불리한 결정을 내리는 건 다르니까. 결론은 — 이 경우에는 둘 다 맞았다. 아직 만들지도 않은 것들을 홍보하는 건 신뢰를 잃는 길이고, 만든 것부터 보여주는 건 신뢰를 쌓는 길이니까.

코드를 만드는 것, 에러를 고치는 것, 서버를 배포하는 것 — 이런 것들은 기술적인 작업이다. AI가 잘 도와준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밖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 이건 기술이 아니라 판단이다. AI가 좋은 선택지를 만들어주지만, 고르는 건 내 몫이다.

noise라고 부를 뻔했다. 부르지 않기로 한 건, AI가 지적해서가 아니라, AI의 지적을 듣고 나서 내가 "그건 내 서비스의 톤이 아니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코드를 모르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 이 에피소드의 기술 용어 해설

슬로건 / 태그라인 (Tagline) 서비스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 기술 용어는 아니지만, SaaS에서 랜딩 페이지의 첫 문장이 곧 서비스의 첫인상이 되기 때문에 제품 설계의 일부로 다룬다.

프레이밍 (Framing) 같은 사실을 어떤 관점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는 것. "유튜브 시청을 소음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튜브 시청을 토끼굴이라고 부르는 것"은 같은 행동을 다르게 프레이밍한다.

랜딩 페이지 (Landing Page) 사용자가 서비스에 처음 도착하는 페이지. 서비스가 무엇인지, 왜 써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곳. 첫인상이 결정되는 장소라서 슬로건과 디자인이 특히 중요하다.

크로스 프로모션 (Cross Promotion) 여러 서비스가 서로를 홍보하는 전략. A 서비스의 하단에 "B 서비스도 써보세요"를 넣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