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26.02.28log

듣기만 하는 사람의 한계

아날로그 인간의 유튜브 학습법이 한계에 부딪힌 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는다. 유튜브를 켠다. 오늘은 인증 시스템에 관한 영상 세 개를 봤다. 집에 도착하면 기억나는 건 "뭔가 토큰이 어쩌고" 정도다. 세 개를 봤는데 남은 건 반 줄이다.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들으면 흘러간다. 눈으로 보면 남지 않는다. 영상을 보면서 뭔가를 이해한 기분이 드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 이해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노트에 적으려고 해봤다. 하지만 듣는 데 집중하면 손이 멈추고, 적는 데 집중하면 내용을 놓친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불편함 자체는 참을 수 있다. 시간을 허투로 쓰는 건 참을 수 없다. 나한테는 이 두 가지가 명확히 구분된다. 지하철이 불편한 건 괜찮다. 하지만 한 시간을 투자해서 영상을 보고, 그 한 시간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낭비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올해만 이 말을 수십 번 한 것 같다.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혹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분명히 이것에 관한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어떤 채널이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지만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검색하고, 다시 보고, 다시 잊어버린다.

Notion에 정리를 시도한 적이 있다. 영상을 보면서 핵심 내용을 타이핑하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유지했다. 결론은 이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상 하나에 노트를 작성하는 데 영상 길이의 두 배가 걸렸다. 30분짜리 영상에 한 시간. 그 시간이면 차라리 다른 영상을 두 개 더 볼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한 시간 동안 적은 노트의 품질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요약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요약 앱이라는 것도 써봤다. 유튜브 영상 URL을 넣으면 핵심 내용을 정리해주는 도구들. 쓸 만했다. 영상 하나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영상 뭐야?"에 답하는 도구는 있었다. "지난 2주간 내가 이 주제에 대해 뭘 배웠지?"에 답하는 도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영상 하나를 요약하는 건 가능하지만, 스무 개의 영상에서 얻은 지식을 연결하고 축적하는 도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런 것이다. 나는 꽤 많은 영상을 본다. 대부분 학습 목적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도구. 각각의 영상은 유익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연결되지 않는다. A 채널에서 본 내용과 B 채널에서 본 내용이 사실은 같은 주제의 다른 관점이라는 걸, 나는 알아채지 못한다. 알아채려면 기억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기억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의 부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도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까지 간 적은 없었다. 만든다는 건 코딩을 한다는 뜻이고, 나는 코딩을 할 줄 모르니까.

HTML이라는 단어는 들어봤다. CSS도.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예전에 템플릿을 사서 웹사이트를 만들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지어진 집에 벽지를 바꾼 것이지, 집을 지은 게 아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 AI가 코드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자연어로 설명하면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고. "바이브코딩"이라는 단어도 그 무렵에 처음 들었다. 코딩의 "분위기"만 잡아주면 AI가 실제 코드를 쓴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프롬프트 몇 줄로 앱이 만들어진다? 그건 마케팅 문구이지 현실이 아닐 거라고. 하지만 실제 사례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과장이긴 하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니구나"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매일 겪는 이 문제 — 유튜브 영상의 지식이 흩어지는 문제 — 를 풀어주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날, 나는 아직 터미널이 뭔지도 몰랐다.


🔧 이 에피소드의 기술 용어 해설

이 편에는 본격적인 기술 용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반복될 두 가지 개념을 미리 짚어둡니다.

SaaS (Software as a Service) 설치 없이 웹 브라우저로 접속해서 쓰는 서비스. Netflix, Notion, Slack이 모두 SaaS입니다. 내가 만들려는 것도 이 형태 — 누군가 주소를 입력하면 바로 쓸 수 있는 웹 서비스.

바이브코딩 (Vibe Coding) AI에게 자연어(일상 언어)로 지시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식. 코드를 직접 쓰지 않고, "이런 기능을 만들어줘"라고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합니다. 2025~2026년에 등장한 신조어.